"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억하는 단 한 사람, B가 엄마인 나에게.
고와마!
내 밥그릇, 아니 간식 그릇.
중년이 우리 모녀에게.
B는 요즘 디저트로 매일 딸기 한 판씩 먹는다.
아마도 농약 딸기.
식사 때 피해서, 텅 빈 업장에서 빨리 먹고 나오기.
B가 작년 십이월 말에
방학을 한 뒤로, 한 달 넘는 방학 기간 내내 주중 점심과 저녁 식사를 시각 맞춰 차렸다. 이달 초, 내가 밥 차리기에 지쳤을 때쯤 개학을 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예정되어있던 급식이 전면 취소되어 이번 달에도 여전히 B의 점심과 저녁 식사를 시각 맞춰 차리고 있다. 며칠 전, 중년에게, "두 달 동안 주중 매일 두 끼씩 시각 맞춰 식사를 준비하기가 힘들었고, 나는 이제 지쳤다"고 하소연을 했는데, 그러면 그렇지, 중년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듣기 싫어했다.
예전에 중년은,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엄마 자격 없다"는 말을 곧잘 하곤 했다. B를 낳고 꼬박 사 년간 그 누구의 도움 없이 나 혼자 B를 키울 때, 내가 하소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중년에게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면, 중년은 내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엄마가 자식 키우는 것을 힘들어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어른이라면 힘든 것을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 되고, 해야 하는 일은 불만 없이 해내야 한다고만 강조했다. 그럴수록 나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를 더 호소했고, 그게 신혼 시절, 부부 갈등의 큰 원인이 되었다. 나는 내가 "우리가 낳은 자식"을 최선을 다해 키우고 있고, 그만큼 매일 지치고 힘들다는 것을 남편에게 인정받고 위로받고 싶었을 뿐인데, 중년은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악을 썼고, 나중에는 "솔루션"을 찾으려고만 했다. 중년 평생의 그 망할 솔루션 타령. 게다가 나는 내 인생의 계획-커리어를 포기하고 원치 않는 전업주부가 되었다는 피해 의식에 절어 있는 사람인데.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 여전하다. 중년의 반응이야 어떻든, 나는 중년에게 내 심정을 적나라하게 내보이고 살겠다. 영~원히!
주중 집안 부분 인테리어 공사로 정신없었다. 공사하는 인부들은 예나 지금이나 거칠기는 매한가지. 싫다, 정말. 공사 이후 공기만큼의 기간 동안 청소를 해야 했다. 밀가루 같은 미세 먼지와 일주일 내내 싸웠다. 온몸이 쑤신다. 무릎 마이 아파.
삼월 개학을 한 달은 늦추고 학생들의 감염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겨우 일주일 늦추겠다고 한다. 학교는 안 그래도 전염병 온상인 곳인데,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