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9










위 희뿌연 세 장의 이미지는 중년으로부터.
















B가 사랑하는 국물, 단 한 그릇에 사백 그램의 한우 살코기를 넣는다.
이날은 현미가 떨어져 밥이 없는 바람에 만두를 넣어 끓였다.












중년과 즐겨 가는 동네 국밥집.
맑고 깨끗하게 끓여 잡내 없는 돼지국밥이 꽤 괜찮은데, B는 싫단다. 같은 고깃국물이라도 엄마가 해주는 것만 맛있다나 뭐라나!








종종 들르는 금수복국 서초점.
연애할 때부터 B 아가 시절까지 압구정점을 즐겨 갔었는데, 이상하게도 금수복국 본점의 후기뿐, 압구정점의 후기가 전혀 없네!




































미간에 빨간 줄이 찌익.




고마운 Andras Schiff.
희뿌연 이미지는 역시 중년의 먼지 낀 렌즈로부터.





나의 B에 대한 조기 교육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는가 온 가족이 체감하는 요즘.
B가 정신이 들기 전부터 서울 도심은 물론이고 전국 방방곡곡 국박과 문화재를 찾아다니며 그저 아가의 눈에 익도록, 저절로 기억되도록 귀에 못이 박히게 내가 구구절절 설명했던 것이 B의 머릿속 깊이 자리 잡아 취향과 안목이 된 것을 이제 분명히 알겠다. 그때 내가 B의 엄마로서의 특장점으로 해 줄 것은 첫째가 그것이었다.
아가 때 엄마가 틀어놓은 음악은 몸속에 저장되어 평생을 따라다니고,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익히게 되어 흥얼거리게 되어버린다. 내가 그랬다. 작품 번호 몇 번인지도 모르면서 어린 내가 애쓰지 않고도 다 외워 흥얼거리게 되어버린 상황. B도 그렇게, 젖먹이 때부터 그렇게 자라도록 했다. 예술의 전당을 공식적으로 출입할 수 있게 된 초등학교 일학년 때부터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탑 클라스의(term이 우습지만!) 연주자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언제나 접하도록 했다.
그렇게 보낸 십삼 년이 B의 근성이 되었다. 이제 그 누구도 돈 주고 살 수 없는, 빼앗아 갈 수 없는 B만의 자산이 되었다.

중년은 여전히 이렇다.
누구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데, 중년은 돌아다니며 주둥이로 빚을 만들고 산다.
오늘 저녁에는 중년에게 두 시간 동안 공들여 만든 돼지수육을-음식 안 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나는 어려서 집에서 수육이라는 걸 먹어 본 적이 없다- 저녁 식사로 냈는데, 감사의 표현은커녕 맛있다는 말조차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맛있냐, 맛없냐" 물으면 결국 화를 내며, "맛없으면 먹겠냐?"고 고함을 지른다. 그러면서 게걸스럽게 먹는다. "고생한 걸 티 내고 싶냐!"고도 한다.
룰루랄라 놀기 위해 전업주부가 되기를 바란 적도 없고, 신생아 B를 친정엄마에게 일주일에 몇 시간만 맡아달라 부탁했지만 거절당하고, 남에게는 맡길 수 없어 결국 이렇게 주저앉아버린, 이름 잃고 팔다리 잘린 나에게, 중년은 "그러게 누가 전업주부 하래? 제발 좀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말한다. 전업주부 신분에도 여느 월급쟁이 수입보다는 내 수입이 나은데, 그럼 나는 뭔데?
이미 십수 년 전 중년에게 말했다. 나는 성취감을 느껴야만 사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원치 않는 전업주부가 된 이후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루트가 지나치게 한정적이라서 사소한 음식 만들기나 타고 난 결벽에 의한 가내 청결, B 양육에 대한 작은 칭찬조차 절실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년은, "성취감은 나가서 스스로 찾으라고!"만 할 뿐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중년은, 온 세상이 자기중심적으로 돌아간다. 나의 맹세는 오늘도 계속된다. 내가 그릇을 정리하다 그릇을 떨어뜨리면, 중년은 "힘든 일 한다고 유세 떠는 거냐?"며 나를 다그친다.

중년이 이렇게 spoiled된 이유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터무니없는 죄의식을 심었기 때문.
카톨릭에서 인류에게 원죄가 있다고, 예수가 인류를 위해 여러모로 희생했다고 기정사실화하고 진행하는 교리를, 중년네 가정에서는 엄마가 네 명의 아이들을 상대로 행했다. 아이들(인류) 네 명을 위해 아버지(예수)가 고통받고 희생하시니, 아이들은 엄마(교리)가 정한 원칙대로 엄마 말을 따라 살아야만 착한 아이들이라고 세뇌를 했다. 엄마에게 있어 착한 것은 선, 안 착한 것은 악. 중년은 초등학생 때 방과 후 친구들과 노는 것도 두려워서 못 했다고 한다. 한 번은 친구들이 방과 후 중년네 집에 놀러 왔는데, 중년이 안절부절못하다가 죄책감에 엉엉 울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고생하시는데 자신이 놀면 죄가 되고 벌 받을 것 같아서 친구들을 쫓아 보냈다고 한다.
또한 양보를 미덕이라 세뇌당해, 세 명의 누이들에게 물질적으로 양보하고 엄마에게 칭찬받는 것이 삶의 낙이다.
본인 때문에 고생하시는 불쌍한 아버지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엄마에게 충성해야 한다고 훈련받은 중년은, 번 돈도 다 엄마에게 바치고 부실한 혈혈단신으로 나에게 취가왔다. 그는 과연 착한 사람인가? 누구에게만?
물론 내가 최고 어리숙멍청처녀였다!
중년은 자신이 누군가와 둘이서 하는 식사에 메추리알과 같이 개수를 셀 수 있는 반찬이 홀수로 나오면 미친다. 남은 한 개를 반드시 상대에게 먹여야만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며 뿌듯해한다. 그런 병적인 집착을 아는 나는, 일부러 상황을 만들어 중년이 더 먹게끔 한다. 그래서 중년은 나를 싫어한다. 물론 내가 그를 더 싫어하지. 걔네 엄마가 만들어놓은 중년의 강박과 정신병적 철옹성은 오십 년 넘게 무너지지 않고 나에게 덤빈다. 아들자식 겨우 그따위로 키워 나에게 떠넘기다니,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망할 혼인 십오 주년을 앞둔, 걔네 미치광이 놀음에 놀아나지 않는 내가.




by SongC | 2019/11/20 02:15 | SongC today! | 트랙백 | 핑백(1)

Linked at SongC : 20210719 at 2021/07/19 22:23

... 이라는 본질만 가진 상대를 구하지 않고, 여성인 것은 기본질 중의 기본에, 나이는 까마득히 어리고, 집까지 사 들고 있는 나를 자살 쇼까지 하시며 간택하시었지. 등에 거대한 빨대 꽂히고도 본가 가족 그 누구에게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으니, 할 줄도 모를 거다. 중년 왈, 가족끼리는 그런 말 하는 게 아니고, 그런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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