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8


중학생이 되어 난생처음 친구와 둘이서만 영화를 보고 시간을 보낸 B가 을지로에서 엄마 먹으라고 사다 준 도넛. 가방 속에서 납작하게 눌렸단다. 엄마의 눈물 젖은 빵.




































































































지난달, 나는 정확히 이십 년 만에, 중년과 B는 난생처음 방문한 홍콩.

이십 년 전, 내가 부모님과 함께 패키지로 홍콩을 여행했을 때는 홍콩인들을 직접 상대할 일이 없었고, 유학 중 알고 지냈던 홍콩인들은 중국인들과는 언행이 다른 "Hongkongnese"였기에, 나는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가서 큰 충격을 받았다. 홍콩 입국 심사할 때부터 타국에서 온 객들을 대놓고 험담하고 젊은 여성들을 성희롱하는, 깡패와 양아치 같은 홍콩(혹은 중국) 남성 공무원들을 봤고, 도심 상점과 하루에 백만 원 내고 묵는 호텔에서도 직원들은 미소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에 사납기만 했다. 호텔 로비에서 그들은 외국인인 내 앞에서 영어로 응대하면서도 동시에 칸토니즈로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었다. 내가 살면서 겪은 무례한 중국인들과 아주 똑같았다. 이제 나에게 홍콩은 곧 중국이다. 딱 그저 그런 그 수준.
출국할 땐, 한 할머니 홍콩 공무원이 여권을 재빨리 스캔하지 못하는 B의 손과 손목을 비틀어 B가 홍콩에 정떨어졌다!!!

하이 스트릿에서나 변두리 서민 동네에서나 보이는 비계가 다 대나무여서 인상적이었다.

호텔 건물 내에서부터 멀게는 몇 킬로미터까지 브릿지로 이어진 호화로운 쇼핑몰들에는 이 세상의 fine jewelry 브랜드는 다 있었고, 명품 브랜드 못지않은 로컬 브랜드도 수십 개였다. 누가 몸에 두를까 싶은 누우런 순금 장신구로 쇼윈도를 가득 채운, 그런데도 너무나 고급스러운 매장도 있었다. 초저녁에도 토사물에 비둘기가 날아든 아랫동네와 비교했을 때, 빈부 격차가 매우 극심해 보였다. 호텔 근처 금융 회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직원들은 하나같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물고 꿈도 희망도 없는 듯한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현재 홍콩 처지에 별다른 능력이나 재주 없는 젊은이들은 앞날이 참 암담하겠다 싶다.
























정신 차리고 찍은 음식 사진은 이게 전부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좋아하는 菜心 원 없이 먹고 왔다.
























호텔 근처, 한 마켓에서 어렸을 때 즐겨 먹던 것 몇 가지를 사봤다.
그곳 부처스에는 한국, 일본, 미국, 호주의 소, 돼지고기를 부위 별로 취급했고, 치즈 구성도 한국 내 어느 곳보다 다양했다. 와인은 물론 한국보다 훨씬 더 저렴했다.








잘 안 보이쥬?
지하 차도와 화분에 낙서처럼 쓰인 FREE HK 등의 글씨들.












리본 호야가 이렇게 피었다가 현재 다 지고 없다.



이천십년에 우리 세 식구 마지막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원전 사고 후에는 피폭을 피해 일본 방문은커녕, 일본산 식자재와 화장품을 차츰 노력해 끊고 사는 중. 이제 일본 하는 꼴이 하도 괘씸해서 내가 즐겨 입던 -중국산- 유니클로 브라탑도 못 사겠다. 팔아주기 싫다. B도 muji 학용품을 끊었다.

이곳에 이사 온 지 딱 삼 년 된 날.




by SongC | 2019/08/08 03:22 | SongC today!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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