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30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프면 즉시 병원으로 달려가거나, 병이 나기도 전에 병원에 가 검진이라는 것을 하고 살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다치고 아파도 병원에 가기는커녕, 검진은 더 안 한다. 자기 혐오 때문인지, 자기 파괴적 성향 때문인지, 뿌리가 같은 내 문제 "전부"의 문제인지.
팔 년 전, 많이 아파 대학병원을 찾았을 때, 그때 처음 백 얼마를 내고 종합검진이라는 것을 한 이후, 단 한 번도 그 어떤 검진도 안 하고 살았다. 중년의 직장에서 매년 한 번 배우자에게 지원하는 종합검진도 단 한 번 한 적이 없다. 건강하다, 치료하면 된다, 또는 평생 관리하고 약 먹어야 한다는 등의 결과 전부 다 나는 듣고 싶지가 않아서. 내가 원하는 결과는 따로 있어서.

이런 나도 이 년에 한 번쯤은 다시 잘 해볼까 하는, 사람다운 의지가 생긴다. 이천십육년 이사 후, 거울을 보다 같은 자리에 다시 생긴 비립종이 눈에 띄게 커진 것이 보였다. 그때 그 비립종. 집 근처에 병원이 수십 개에, 그중 팔 할이 피부과와 성형외과인 터라, 여러 과가 모여 있고 종합검진으로 먹고사는, 인근 가장 큰 병원의 피부과를 방문했다. 피부과와 성형외과는 종합검진과 별개로 또 대단하게 광고하는 곳.
나는 피부과 전문의를 만날 수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유니폼을 입은 과한 성형 얼굴 여성이 나를 자기 방으로 이끌었다. 그 사람은 내 방문 목적을 -비립종 제거- 묻더니, 대뜸 내 얼굴에 사마귀가 열 개 넘게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녀가 있냐며, 있다면 아이들한테 다 옮길 거라고, 열 개 전부 제거하는데 xx 만원만 받겠다고 했다. 사마귀라니, 사마귀가 뭔데, 그때 내가 얼마나 놀라고 당황했는지. 그래도 휩쓸리지 않고, 오늘은 내가 계획한 대로 비립종만 제거하겠다고, 전문의를 만나 얘기하고 싶다고 성형 얼굴의 말을 끊었다. 마취 크림을 바른 후,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게 마스크와 고글로 무장한 K대 출신 피부과 전문의에게, 대기실 직원이 나에게 사마귀가 열 개 넘게 있다고 했는데, 정말 내 얼굴에 사마귀가 있는지 물었다. 그 피부과 전문의는 있는 것 같다고 했고, 나는 정확히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피부과 전문의는 지금도 어디인지 모를 내 얼굴 어딘가를 가리키며 귀찮다는 듯 얼버무리고 시술을 시작했다.
그 병원에서 그렇게 비립종 몇 개를 제거하고, 다음날인가, 나는 그때 그 양심적인 의사의 행방을 알아내어 옮긴 새 병원으로 팔 년만에 찾아갔다. 가서 그 의사에게 내 얼굴에 정말 사마귀가 열 개가 있는지 물었더니, 그 의사는 한 개도 없다고 했다. 정말 없냐고 내가 되물었더니, 정말 없다고 했다. 코디네이터라는 존재와 그런 병원에 대해서 사기꾼 박근혜와 다를 바 없다는 등의 대화를 몇 분 하다가, 나는 출산 후 생긴 그 기미가 전원생활 사 년 하는 동안 너무 진해져서 이제 내 얼굴은 메추리 알이 되었다고, 레이저 시술을 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 의사는 또! 레이저 시술은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의사의 요는, 피부 좋고 나쁨은 타고나는 것이라서 레이저로 뭘 하고 만다고 영원히 좋아지고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럼 연예인들은 다 뭐야.

약 일 년 반이 지난 오늘, B가 만 십일~이 세에 맞아야 하는 Tdap 접종하러 문제의 그 "인근 가장 큰 병원", 이번에는 소아청소년과를 방문했다. 집 근처에 소아청소년과는 그곳뿐이기 때문. 접종 후에야 알았는데, 이제 국가에서 지원해 무료라고 했다. B는 요즘 아가들과는 달리, 예방접종에 -내 기억에- 백만 원도 더 든 옛날 아가여서, 수 년 만에 하는 추가 접종이 무료가 되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언젠가는 전 국민이 나 빼고 매년 맞는 독감 예방접종도 무료가 되고, 자궁경부암백신을 남학생들도 맞게 하는 선진국이 되겠지?! 좌우지간, 오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그 병원 피부과 의사+코디네이터와는 달리 예방접종만을 위해 방문한 B의 숨소리도 청진기로 들어주고, 문진도 하고, 낯빛도 살피는 등 교과서적으로 해주었다. 당연한 건데 고마웠다.

B의 접종을 위해 방문한 겸, 몇 달 전 나에게 온 자궁경부암 국가검진 우편물이 생각나, 나답지 않게 큰마음 큰 용기 내어 그 병원 산부인과도 방문했다. 무료 검진이니, 국가 검진이니 하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하는 것. 산부인과 접수를 하니 그제야 간호사가 방문 목적을 묻길래, 자궁경부암 검진하러 왔다고 말했더니, 간호사가 그 국가에서 무료로 하는 거요, 라고 외치며 갑자기 불친절해졌다. 다른 곳에 가서 설문지를 작성해서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내가 온 김에 초음파를 봤으면 한다고 했더니, 그건 돈 내야 해주고 실비로 받고 싶으면 자궁경부암은 진료비가 어쩌고 검진비가 어쩌고 해당이 되고 안 되고 알 수 없는 말을 해대며 나를 거지 취급했다. 내 돈 내고 초음파를 보겠다는데, 실비가 뭐고 보험이 뭐고 환급이 뭐고 그래도 할 거냐며... 나는 그런 보험 없고, 비싸다고 뭐라고 안 하는데. 야야야! 짜증이 났지만 교양있는 척하며, 생리 끝난 지 오 일 될 때쯤 다시 오겠다고 거짓말하고 말아버렸다.
이어 만난 산부인과 전문의는 문진은커녕 내 얼굴 한번 안 보고, 내 몸에 질경을 넣어서는 자궁경부 조직을 떼어갔다. 그 간호사와 의사는 내가 비싼 고급 학문을 공짜로 탈취해갈까, 내가 의사에게 질문 한 개라도 할까 봐 나를 재빨리 진료실에서 빼냈다. 의사는 딱 그 조직 취하는 행위만 했다. 질문하지도, 받지도 않았다. 질경을 넣었으니 의사가 육안으로 알게 된, 판단한 것이 있을 수도 있는데, 만약 상태가 이상해 보일 때 얘기를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이러해 보이니 다른 병원에 가서라도 검사해보라는 등. 이러이러해 보이니 결과 나온 후 꼭 관련 검진받아보라는 등.
국가 무료 검진이라는 게 꼭 이래야만 하나. 병원도 국가 무료검진 따위 "해주기" 싫은데 공단 눈치 보느라 억지로 유치한다 그건가. 억지 봉사하는 것처럼, 지나치게 성의 없는 의료진 태도가 불쾌했다. 그런 곳에서는 초음파 비용 몇만 원도 기분 나빠서 쓰기 싫다. 오늘도 사람에게 실망. 암 검사 결과는 믿을 만한 건지 의심스럽다.

오늘은 육 개월마다 하는 B의 안과 검진일이기도 했다. 올해 들어 이십 년 만의 시력 변화를 느낀 나도 B 따라 검진을 했다. 안과 검진도 팔 년 전 그때 이후 처음. 노안 시작. 안경과 렌즈 도수를 낮췄다. 친절한 안과 전문의는 나에게 꼭 육 개월마다 상태 체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낯모르는 사람으로부터의 위로, 마치 '자학하지 말고 잘 버티세요' 라는 것만 같은 말이었다. 이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면 나는 몇 년 안에 돋보기 행이다.
B는 시력에 큰 변화 없어 오늘 신났다.

이제 나의 다음 병원 방문은, 6-8-10이니, 2020년이겠다. 짝수년.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나도 시작부터 이런 사람은 아니었다.




by SongC | 2018/05/01 04:10 | SongC today!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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