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02


셋 다 더 자고 싶었지만 셋 다 억지로 일어나 셋이 함께한 새해 떡국 상. 이렇게 먹고서 손 설거지를 해야 하는 유기를 놓아둔 채 몇 시간 더 자고 일어났다. B에게 올 한 해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인생 잘 풀리라고 덕담하고, 오류 난 인공지능 같은 나의 그에게도 하는 일 순조롭게 잘 풀리라고 한 마디 했다. '오류 난 인공지능'은 며칠 전 내 멋대로 지은 나의 그, 중년의 새 별명.
나의 그는 자신이 이제 나뿐 아니라 B에게까지 혼나고 잔소리 듣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 밖의 일이야 자신이 잘 알아서 하지만, 집안에서 그의 행동은 그냥 오류 난 인공지능인걸. 개그 소재 같기도 해 남들은 웃겠지, 나는 팔자에도 없는 말썽꾸러기 아이 맡아 키우는 것만 같다.
몇 가지 떠오르는 걸 적어보면, 그는 핫초컬릿을 좋아하는데, 핫초컬릿 가득 담긴 컵을 들고 걷다가-물론 집 안에서- 혼자 다리가 꼬여 바닥에 줄줄 흘리고(내가 매번 현장 뒷수습), 흰 벽에 색깔 음료를 거의 飛散 수준으로 묻히고(둘이 팔이 빠지게 걸레질), 막 돌리려는 식기세척기를 세척이 끝난 것으로 상습적으로 착각해서 그릇을 막 꺼내고(내가 매번 현장 잡아 저지해야), 필터 세척 중인 속이 빈 청소기로 후버하고(그럴까 봐 누가 봐도 필터 세척 중으로 보이게 청소기 뚜껑을 일부러 활짝 열어두었더니 뚜껑 잘 닫고 청소기 작동), 결혼 초 내가 바쁘던 시절, 딱 두 번 세탁기를 돌려달라 부탁했는데 두 번 다 세탁 후 옷이 좀 이상해 알고 봤더니 섬유유연제 칸에 울 샴푸 넣었고(세탁은 무조건 내 몫), 빨래가 축축한지 다 말랐는지 전혀 판단을 못 하고(그래서 내 몫), 최근에는 내 꽃무늬 양말을 자신의 새 양말로 착각해 신고 외출했고(다 늘어남), 어제는 이를 닦고 나더니 자기가 내 칫솔모로 이를 닦았다고 실토. 자주 있는 일로, 또 착각했단다. 졸지에 난 새 칫솔모 쓰게 되었다. 오늘 B의 제보에 따르면 아침에 아빠가 빈 캐틀을 가열했다고! 옷 수납 위치도, 매일 쓰는 그릇 수납 위치도 잘 기억하지 못해 내가 늘 알려줘야 한다. 마이너스의 손이 깨고 금가게 한 그릇 일부는 블로그에 공개한 바 있다. 이제 B는 자신을 잘 챙기게 되어 점점 내 손을 떠나가는데, 나의 그는 여전하다. 앓느니 죽는다고, 이러니 내 몸이 힘들어도 그냥 내가 다 도맡고, 어린 아이 대하듯 챙기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그-오류 난 인공지능분-의 장점은, 단순 노동에 큰 불만이 없다는 점과 내가 시키는 대로 하려고 한다는 점. 내 기준에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는 -내 결벽증이 원인이기도 하겠지만- 섬세함 부재와 기억력 문제. 후버하기와 스팀, 한 방향으로 유기 닦기, 창틀 닦기, 유리 닦기, 하루에 열 번도 재활용품 버리러 가기 등의 단순 노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기계 같으면서도 오류 난 인공지능 같은 인간.
장점이자 단점은 한 번 프로그램되면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점. 예를 들어 다음 달에 부산에 여행을 가기로 했다면 꼭 부산에 가야지, 그 근처 김해나 창원으로라도 여행지가 바뀌면 큰일, 아주 큰 일 난다. 심지어는 식사를 하기 위해 목표한 음식점에 가는 길에 내가 다른 음식점을 제안하면 싸움 난다. 만약에 내가 거실 식물의 잎을 매주 한 번 닦으라는 명령을 하고 활엽수 화분을 갖다 놓는다면 그는 물론 실행할 테고, 내가 식물을 침엽수로 바꿔 놓아도 바늘잎 한 개 빼놓지 않고 한 개씩 한 개씩 다 닦을 것이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의 어록 중 최고는, "먼지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야."이다.












B의 티팥과 Karel Capek의 2011년 토끼 머그. 잘 쓰고 있다.
우사기 시리즈 참 매력적이다.








예술의 전당이 무섭게도 巫術年이라고 엉터리로 쓴 것을 이제서야, 아예 한글로만 표기했네?!



戊戌年 새해는 立春부터.




by songc | 2018/01/03 02:50 | SongC today!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vamosrafa at 2018/01/08 02:12
이제 블로그를 안하시나 했는데, 반갑습니다(두어번 인사드렸었던 사람입니다) 온가족 건강하고 상쾌한 한해 되시길 기원할게요!
반가운마음에 밑의 글들도 읽어보았어요.조성진의 리사이틀에 대해 읽고 몰랐던 괴기한 팬덤에 대해 알았네요.
조성진씨가 정말 좋은 예술가라면, 이 헛되고 기괴한 거품인기가 다 가라앉고 난 몇년 뒤 더욱 대단한 예술가가 되어있겠지요. 우린 그때 그의 예술세계를 접하면 지금 접하는 것 보다 더 좋을것이구요....유명해진 다음 몇년의 시간동안 해괴하게 변해버리는 젊은 예술가들도 요즘엔 많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Commented by songc at 2018/01/08 02:54
오랜만이에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조성진은 아이돌 연예인 따라다니던 애들이 팬이랍시고 따라붙어서는 예당에서도 대포같은 카메라로 찍어대고, 핸드폰 촬영은 기본, 녹음도 하고 하더군요. 제가 조성진 관계자라면 한국에서는 연주는 커녕 인터뷰도 하지 말라고 할 것 같아요. 한국에서 크***와 일하는 것도 커리어에 전혀 도움 안 되는 것 같고.
Commented at 2018/01/09 07:2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gc at 2018/01/11 05:35
바딤 레핀 좋아하신다고 기억해요. http://songc.egloos.com/353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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