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1


이곳에 이사 온 지도 일 년하고 삼 개월이 지났다.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병원은 사기꾼 같고 식당은 불친절하지만- 다 있어 살기 편한 곳이다. 다만 가끔 풀 만지고 흙 밟던 전원이 그리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언젠가 다시 전원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갈 수 있을까, 앞으로 상황이 허락할까, 간다면 어디로, 막연한 생각뿐이다.
작년 가을, 이 년간 손 안 대고 기르던 내 머리카락과 B의 머리카락을 2014년 봄에 그랬듯 싹둑 잘라 소아암 재단에 다시 기증했다. 이후 B는 머리카락을 기르는 중이고, 나는 올 한 해 미용실에 두 번 더 가 짧게 유지 중이다. 여전히 자연 모발모발 그대로. 가끔 거울을 보면 웬 늙은 여자가 있어 흠칫 놀라고, 십여 년간 더는 나빠지지 않아 불편함이 없던 시력이 최근 나빠졌다. 내가 늙은 만큼 B는 키가 자랐고, 좀 퉁퉁해졌고, 초등 전 과정을 끝냈다. 사춘기 소녀답게 갈수록 웃음도 화도 많아지고 예민해지는 듯하다. 이제 Chopin Ballades, Etude와 Beethoven Sonata #21을 친다.




2017. 11. 19~20.
2013년 11월과 마찬가지로 이틀 동안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렀고, 잠이 부족해도 피곤하지 않았다. 수일 전부터 가슴이 설렌 것은 덤! 겸손하게 물러나는 Rattle과 Berliner Philharmoniker의 국내 마지막 연주였다. B는 일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이틀 연속, 베를린필의 두 번의 연주를 관람했다. 레슨 선생님께는 구박을 받을지언정 귀만큼은 다이아몬드 귀인 B는, 합법적으로 공연장을 출입할 수 있는 나이인 일학년 때부터 일류 오케스트라와 연주자의 연주는 다 찾아가 듣고 꼼꼼하게 후기를 써오고 있다. 듣는 귀가 제법 정확하고 날카로워 어떤 악기가 어디를 어떻게 틀렸는지, 누가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잘 했고 못 했는지, 다른 지휘자와는 해석의 어떤 점이 같고 다른 지등을 매우 섬세하게 잡아내 자신의 생각과 함께 기록한다.

B는 조성진의 우아하고 세련된 연주를 아주 좋아하는데, 이번 베를린필과의 협연은 운 좋게 관람했지만, 콩쿨 이후 대중에 조성진이 알려지면서 돈이 있어도 티켓을 못 구하는 상황이다. 콩쿨 직후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작년이었나 콩쿨 이후 첫 독주회도 티켓을 못 구해 우리 가족은 그의 연주에 가지 못했다. 도대체 조성진 티켓팅이 왜 이렇게 힘든지 알아보다가 조성진 팬덤 저변에 특정 부류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연예인을 스토킹하며 따라다니다가 우연히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알게 되어 연예인과는 좀 다른 "피아노 치는 남자"의 분위기에 빠진 사람들로, 스토킹으로 단련된 빠른 클릭 질로 티켓팅에 목숨 걸며 필요한 티켓이 한 장임에도 불구하고 한 칸이라도 앞자리에 앉기 위해 티켓을 사고 또 사 티켓 사재기를 하고는 필요 없는 티켓은 취소를 않고 끝까지 쥐고 있다가 자신과 비슷한 부류가 모인 집단 내에서 티켓 "양도"라는 것을 하고, 연주회장에서 관리자 몰래 미친 듯 사진을 찍고, 커튼콜 중임에도 사인회 줄을 서기 위해 뛰어나가는 그들만의 문화와 방식을 가진 부류. 소위 말하는 "groupie". 그런 그들은 평범한 팬들과는 달리 티켓팅에 성공하고 자기들끼리 사고팔며 결국 조성진을-듣지는 못해도-보기는 하는 것이다. 아니면 우리 부부가 주최 측이나 후원사에서 와주십사 초대하는 사회지도층 인사라면 편히 갈까. 이도 저도 아니니 우리 가족이, 우리 B가 조성진 연주를 관람하기는 힘들기만 하다.
크레디아는 여전하다. 안 듣고 말지, 유료 회원이 되기는 싫다.




by songc | 2017/11/22 01:27 | SongC today!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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