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3일
20121022

시골 주택에서는 계절을 온몸으로 느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달라지는 바람 세기, 집 안팎 온도, 빨래가 잘 마르고 안 마르는 정도, 그리고 햇살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챙의 크기와 모자의 종류.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는 나뭇잎들의 색깔과 모양, 아침 저녁으로 달라지는 나뭇잎들의 양,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관찰하는 재미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 블라인드를 여니 어제까지 듬성듬성 초록빛이 보였던 앞뜰이 밤새 황금들판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이렇게 사는 우리 부부. 결혼 초 중년의 식사 시간 타령에 질릴대로 질린 나는 이제 그 망할 시각만 되면 시계를 보며 혼자 안절부절한다. 최근 몇 달간은 하루 두 끼씩 매일 시간 맞춰 꼬박꼬박 차려 바치고 있는데, 나에게는 그 일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오늘은 '내 부모가 시간 맞춰 저 중년 먹을 밥 차려주라고 나를 낳으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끼 게걸스럽게 먹고 과식했다며 괴로워하는 중년은, 내가 만든 음식을 그렇게 먹으면서도 나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누가 힘들게 밥 차리라고 했냐, 나는 밥 해달라고 한 적 없다, 네가 안차려줘도 난 스스로 잘 챙겨 먹는다" 는등 기운 빠지는 것들 뿐이다. 못났다. 스스로 한답시고 부엌 살림 망가뜨리고 내가 아끼는 그릇이나 -제발- 깨부수지 않으면 다행이다. 중년에 의해 초토화된 주방 뒷처리하느니 차라리 내가 주방에서 바스러지던지 꼬꾸라지던지, 순직하겠다.
중년이 '몸에 안좋고 아이 교육상 안좋다' 는 이유로 동네 배달 음식을 못 먹게 해, 결혼 이후 최근까지 우리 집에서는 배달 음식을 전혀 먹지 않았다. 올 여름에는 결혼 생활 8년 만에 첫 배달 치킨 주문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다툰 적도 있다. 중년은 배달 치킨을 주문하는 것이 아이 교육상 대단히 안좋다며 주문하지 못하게 했고, 난 내가 먹을 치킨 한 마리 내 마음대로 시키지도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이 비참하고 기가 막혀서 며칠동안 죽도록 싸웠다. 이 싸움은,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된 내 아버지의 "배달 치킨 가끔 먹는다고 안죽는다" 는 말 한마디로 정리되었다. 치킨대첩. 써놓고보니 더 못났다, 다.
오늘 중년이 B의 지구본과 내가 아끼는 램프를 망가뜨렸다.
B가 말했다. "엄마는 남편을 잘못 골랐어" 라고.
# by | 2012/10/23 01:41 | SongC today! | 트랙백 | 핑백(2) | 덧글(7)
... 주를 언제나 접하도록 했다. 그렇게 보낸 십삼 년이 B의 근성이 되었다. 이제 그 누구도 돈 주고 살 수 없는, 빼앗아 갈 수 없는 B만의 자산이 되었다. 중년은 여전히 이렇다. 누구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데, 중년은 돌아다니며 주둥이로 빚을 만들고 산다. 오늘 저녁에는 중년에게 두 시간 동안 공들여 만든 돼지수육을-음식 안 ... more
... 말은 아무에게도 안 들림. 유아기부터 "먹을 수 있을 때 배불리 먹어놔야 한다"고 훈련받았다는 식탐 센 중년은, B의 음식 요구는 무조건 다 들어준다. 중년의 본색성은 여기. 동네 맛집에서 사 온 것들. 포일에 싸인 메뉴는, 포일 때문에 먹기 불편했지만, 왠지 업장의 단품 요리를 내 접시에 그럴듯하게 옮겨 담는 건 가식 같아. B가 ...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