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nture Studio Korea

부제: it sucks

얼마전 내가 이용하는 백화점으로부터 VVIP 마케팅 관련 안내 책자와 쿠폰을 받았다.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한강에서 요트타기 등의 멤버스 이벤트와 보톡스, IPL 시술 등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쿠폰이 몇 장 들어있는 일종의 선물(?)인 셈이다. 그렇게 받은 쿠폰 가운데 벤처 스튜디오의 무료 촬영 쿠폰이 있었다- 한 시간 촬영 후 작은 탁상용 사진을 인화해주는 37만원 상당의 쿠폰.

다들 아시겠지만 얼마전이 B의 생일이었고, 매년 생일에나마 사진관에 가서 전문가의 손으로 사진 한 장씩 찍어주리라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인지 나는 나의 그에게 무료 촬영 쿠폰을 써보자는 제안을 했다. 나의 그는 분명 공짜로 낚아서 더 크게 쓰게 하려는 미끼일 것이라며 만류했지만 나는 뭐에 홀린 듯, 아마도 B의 생일 때문이었을텐데, 생애 처음으로 공짜 쿠폰을 써 보고자 촬영 예약을 했다. 그리고 퀄리티에 대해서는 아무리 무료 쿠폰일지언정 최우수고객을 대상으로 쿠폰을 제공한 백화점측을 믿었기 때문에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전부 다 내 착각이었지만.
나는 아가들의 성장앨범이니 무슨 무슨 기념앨범이니 하는 것에 부정적이어서(그런 것들은 사진관의 cash cow 되겠다), B의 백일 사진은 우리가 집에서 찍었고, 첫 생일에 처음으로 사진관에서 이영희 선생님 작품 입은 모습을 찍어 그리 크지 않은 사이즈로 한 장 인화했다.
실은 약혼과 결혼 사진도 안 찍으려다가(증거 사진은 지인들의 디카로도 충분하지 않나?) 주변의 만류에 의해 가장 적은 장 수의 앨범을, 가장 저렴한 겉 표지를 씌워 만들었다.(그 두개의 앨범은 수령할 때 확인한 이후로 한 번도 펼쳐 본 적이 없다) 아무튼 B의 생일이 며칠 지난 시점에, 동네 사진관이라도 찾아가야 할 급한 시점에 손에 쥐게 된 쿠폰으로 인해 자신들은 기존의 사진관과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영국에 본사를 둔 벤처 스튜디오에 가게 되었다.

이후 사실을 간략하게 시간순으로 나열하자면,

전화 예약 후 벤처 측에서 한 차례 더 전화를 해왔다. 예정된 피사체 개개인의 이름을 물었다. 굳이 알려줘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알려주지 않았는데 친밀하게 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이름을 알아야한다고 했다. 그 외 B의 취향과 성격, 우리가 입을 옷, 원하는 촬영 방향등을 꼬치꼬치 묻는 긴 통화를 했다. 통화 한 사람은 촬영하는 사람이 아닌 사무직원인 듯 했다. 그녀는 B가 좋아하는 소품을 다 가져오라고 했고, 업체의 홈페이지를 둘러보고 오라고 했다.

약속된 시간에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잠시 후 나타난 한 남성은 나의 그에게 대뜸 "OO씨죠?" 라며, 자신은 qq(다른 알파벳이었다)고 만나서 반갑다며 악수를 청했다. 나에게도 악수를 청했다. qq는 자신이 촬영을 할 것이라며 앞서 통화한 직원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가족구성원들의 이름을 또 물었다. 면상에서 물으니 안 가르쳐줄 수가 없어 그냥 알려줬다. 
견습생이 촬영을 지켜볼 것이라 해서 알았다고 했다.

촬영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겼다.
아마도 본사에서 왔을 외국인 여성과 견습생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있었다.
B가 스튜디오의 큰 음악소리에 주눅이 드는 듯 해 qq에게 조용한 노래로 바꿔달라고 하니 볼륨만 줄여 주었다.
촬영을 위해 B가 좋아하는 공과 블럭을 들고 갔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아이는 공놀이며 블럭을 계속 하려고 하고, qq는 이렇게 저렇게는 그만하고 이번엔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는 요구를 했다. 홈페이지에 의하면 작가가 자세나 표정 따위를 요구하기 보다는 클라이언트가 마음껏 놀면 되는 것이라고 해서 그런 분위기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촬영 중 qq는 계속 나의 그의 이름이며 내 이름을 OO씨라고 불렀다. 불쾌했다.
qq가 아닌 견습생이 이십여 분 촬영을 했다. 나의 그는 무료 쿠폰을 들고 온 이유로 우리가 마루타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총 한 시간 촬영을 한 후 qq에게 제품의 종류와 가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촬영한 이미지의 시사회가 있었다.
우리는 약속한 시간에 도착했고, 리셉션 직원은 qq가 촬영중이라며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그로부터 십 분이 지났을 때 나의 그에게 이미지를 안 보고 다 버려도 좋으니 그냥 가자고 했지만, 나의 그는 아무리 그래도 B의 사진이 있는데 안 보고 버릴 수는 없다며 좀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이십여 분이 지났을 때 qq가 나와 사과하며 좀 더 기다리라고 했다. 그로부터 십 분을 더 기다리니 qq가 방금 촬영을 마친 사람들과 우르르 나왔다. 삼십 분을 기다린 우리 앞에서 qq는 그들에게 사진 상품에 대한 설명을 했다. 그들은 삼代 가족이었다.
우리는 총 삼 십분을 기다렸다. 나의 그와 나의 삼십 분이 얼마짜리인지 아는가?

시사회가 시작되고, 촬영분 중 qq가 한 차례 골라놓은 이미지들을 보았다.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 있어 쿠폰으로 구입할 수 있는 사이즈(그 곳 제품 중 가장 작다)로 주문을 하겠다고 하니 사이즈 인라지와 액자의 크기와 재질을 바꾸라고 자꾸 권유했다. 다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들이었다.
내가 그런 서비스를 받고도 추가비용을 내며 큰 사이즈의 금테 두른 이미지를 주문하겠는가?



밑줄을 그어놓은 부분은 지적이다.
컨설팅을 어떻게 받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영국이 아닌 한국에서라면, 내가 보기엔 여기가 영국일지라도, 바로잡아야 할 점들이 눈에 띈다.
우선 전화 통화를 한 적도,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직원에게 전해들은 것이 전부인 클라이언트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대뜸 성도 빼고 "철수씨죠?" 라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무척 무례하다. 아마도 qq가 어린이 또는 청소년 고객을 처음 만나는 자리라면 그렇게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성인 고객에게 대뜸 OO씨죠, 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 의도와 달리 전혀 쿨 해 보이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3代 가족의 노인네는 qq에게 과연 OO씨라고 불렸을까, 궁금하다. 
참고로 qq는 30대로 보이는 남성이다, 그리고 나의 그보다 어리다. 

악수를 청하는 것이 진취적으로 보이고, 또 사람에 따라서는 믿음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곳에서의 악수는 나에게는 그저 좀 더 쿨 해 보이고자 하는 요식행위로 비춰졌다.
이 경우를 떠나서 보더라도 나는 악수하는 것이 정말 싫다. 타인과의 스킨쉽과 손으로 옮겨질 것들이 불결하다.

작가가 자신을 qq라고 소개했다. 아무 문제 없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영문명이자 벤처 측의 방침일지언정, 자기 자신을 알파벳 레터 두 자로 소개하려면 적어도 성이 박힌 명함이라도 건내던지, 아니면 이름이 OOO인데 qq라고 불린다, 또는 불러달라고 소개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적어도 이 곳 한국에서는 말이다.
누가 나에게 너네 가족사진 누가 찍었냐고 하면 난 뭐라고 해야하나? 성도 몰라 이름도 몰라, qq라는 사람이 찍었다고 하면 되나?

나는 촬영 전 벤처의 홈페이지와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고는 피사체가 자연스럽게 놀고 있으면 작가가 알아서 찍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어린 아이를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촬영하기에 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심 촬영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막상 촬영해보니 작가의 요구는 기존의 사진관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무료 쿠폰으로 촬영을 해서인지 견습생이 카메라를 잡기도 했다.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시사회를 위해 우리가 정한 것도 아닌, qq가 정해 놓은 시간에 맞춰 갔음에도 삼십 분을 기다리게 했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시사회 스케줄 약속지에는 시사회에 늦으면 할인을 안 해준다는(물론 공짜 쿠폰의 경우에는 해당 없다) 엄포가 적혀 있던데, 작가가 약속을 어기는 것은 괜찮은가? 아니면 공짜 쿠폰 소지자는 삼십 분 정도는 기다려도 된다는 것? 정확히 38분 기다렸다.

촬영을 방금 마친 작가가 제품 설명과 판매에 바쁜 모습이 보기에 민망했다.
시사회 후에도 자꾸 뭔가를 추가하기를 권하는데, 그런 것을 맡는 직원이 따로 있다면 작가의 전문성이 더욱 강조되고 고객이 민망할 일도 없을 듯.

벤처 측이 간과한 것이 있다.
그 무료 쿠폰은 잡지 부록으로 나간 것도 아니고, 캔 음료 뚜껑에 박혀 나간 것도 아니고, 사진 찍을 돈이 없어 무료 사진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선심 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서비스가 이러한 것을 보건데 백화점 측에서 쿠폰을 구입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벤처 스튜디오 측에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백화점을 통해 VVIP에게 쿠폰을 배포, 결국 이 쪽은 생색내고 저 쪽은 추가추가추가로 떠 안겨 윈윈하자는 것이었을텐데...
내가 무료 쿠폰을 통해 경험한 벤처 스튜디오는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을 달아나게 하는 곳이었다. 결국 마음에 드는 이미지가 한 장 밖에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여러 장 있었다 해도 그런 곳에 이익을 주기는 싫어 이미지를 포기했을 것이다.

내가 지인들에게 벤처 스튜디오를 추천할까? 아니요.
내가 다시 그 곳을 방문할까? 아니요.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공짜 쿠폰으로 보톡스라도 맞았으면 정말 큰 일 날 뻔!)




by songc | 2008/08/31 06:59 | shops & stores | 트랙백 | 덧글(10)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08/31 13:40
백화점으로 연락하시면 ... 어떨까요. 음-
Commented by songc at 2008/08/31 16:26
백화점 측에서 알건 모르건 달라질 것은 없을겁니다. 만약 있다면 다음번에 쿠폰 제공/알선을 하지 않게 된다는 정도 일까요?!
저는 이용후기 올렸고, 애독자님들이 읽어보시면 된거죠 뭐.
Commented by 쩨인 at 2008/08/31 22:17
진짜 속상하셨겠네요. 백화점이 그 업체관리를 잘못한 게 맞죠. VVIP 서비스가 그 따위라니... 엎어버리시지 그러셨어요. 스트레스라도 풀리게.
Commented by songc at 2008/08/31 23:28
처음 만나는 사람이 대뜸 OO씨라고 부른 것과 38분이나 기다리게 한 것은 무척 불쾌했답니다.
처음 만나는 클라이언트를 성 빼고 이름만 부르는 것이나, 자신을 이니셜로 소개하는 것이나, 억지스러운 악수나 다 컨셉인 것 같더군요.(먹히지 않는 컨셉이요.) 지금이 90년대도 아니고, 현재 서울에서 그런 것을 cool하다고 받아들일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습니다.

어쨌건 저는 그들 사업이 앞으로 어찌 되건 말건, 저와 같은 경우가 또 발생하건 말건 제가 알 바 아니니 괜히 엎으며 에너지 낭비 할 필요는 없지요. 백화점의 경우도 제가 제보를 할 필요는 없구요.(백화점에 그 정도의 애정이 있을리가요.) 해봤자 듣는 소리는 "그러셨어요, 죄송합니다" 일걸요.
이렇게 후기를 올리면 적어도 제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은 그 곳에서 그런 대접은 받게될 일은 없을테니 됐어요.

제가 알기로는 여러 업체에서 제 블로그 모니터링을 한다고 하니 어쩌면 알게될 수도 있겠네요.
Commented by blackout at 2008/09/02 10:03
회사를 다니다보면, 정말 기다리는 시간, 싸우는 시간이 아깝더라구요. 한번은 비행기가 딜레이 되는 바람에, 휴가 이틀을 날린적이 있었는데, 도대체 이게 얼마짜리야, 그러면서 많이 열받았었다는.
Commented by songc at 2008/09/02 17:37
별 것도 아닌 일에 시간 허비하게 되는 상황은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소비자와 고객의 입장으로서는 말이죠.
Commented by 국땡이 at 2008/09/02 23:30
저도 같은 옷 같은 배경에서 억지로 시선 끌며 힘들게 사진 찍어 성장앨범이라는 것에 회의를 느껴서
일상의 모습을 남겨주고 있는데요 정말 짜증나셨겠어요.
게다가 스튜디오의 옷들이 한번 입고 세탁이 된다는 보장이 없기에 더더욱 싫더라고요.
Commented by songc at 2008/09/03 00:04
티비에서 아기들 성장앨범 촬영하는 것 보면 왜 저렇게 고생스럽게 연출하면서까지 아기 사진을 찍어야하나 싶더군요.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 나중에는 지쳐서 그만...

집에서의 촬영이 단조롭다면 하루정도 사진작가를 고용해서 파파라치처럼 가족들을 따라다니게 하는건 어떨까요? 그 하루동안 가족들은 파파라치를 의식하지 않고 어디든 함께 놀러 다니면 되구요. 스타들은 도촬풍 이미지를 위해 그렇게도 한다는 것 같던데, 이런 상품도 곧 나오지 않을까요?
Commented at 2008/10/30 05:3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gc at 2008/10/30 10:12
저야 우연한 기회에 무료로 찍어서 이 정도인데, 제 값 다 지불하고 그런 불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받으신 거라면 정말 안타깝네요.
사진 이용은 당연히 반대입니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작성 시간을 보니 정말 밤 새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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